2008년 01월 28일
행복찾기(2)
삶의 진실을 찾아내고 포기하지 마세요. 말투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세요.
미국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마틴 셀리그만 박사는 동물들의 숙달된 무기력과 사람들의 언어 습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숙달된 무기력이 무엇일까요? 실제로 할 수 있는데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낙관적인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이유》란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또 한편의 숙달된 무기력에 대한 글은 Hani님의 학습된 무력감2란 글을 참고 하세요.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을 때 물대포를 맞으면 물대포를 쏘지 않더라도 바나나를 따 먹지 않는다는 실험이죠.)
우리가 이 글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고 배운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죠. 저는 영화 미스트의 끝 장면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왜냐하면 그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사람들은 한 발자국만 앞에 가면 해결이 되는데 앞이 안개처럼 뿌옇게 되어 한치 앞도 안 보이면 스스로 포기하여 자살해요.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는 사람 수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왜 옳은가의 문제이죠. 또 그것을 끊임없이 찾아야 합니다.
셀리그만님은 숙달된 무기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숙달된 무기력이 사람들에게는 언어 습관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에 맞서 싸우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을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무력하게 그리고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죠. “난 안 돼, 불행해, …” 이런 언어 습관이 들면 우린 불행을 끌어당깁니다. 관심을 갖자마자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앞에 펼쳐진 경험이 있으세요. 내가 필요한 사람이 만나자고 한 경험이 있으세요. 그런 겁니다. 사람은 바라고 있는 것을 끌어당깁니다. 이것은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란 책을 보면 자세히 나오는데요. 여기서는 심지어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를 그려 놓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여러 가지 예를 보여줍니다.
다행히도 나쁜 언어 습관에 대해서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셀리그만님이 말한 것처럼 우린 그것을 익혔다면 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하세요. 행복을 배우세요.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불행하다고 말하고 불행한 것을 바라보면 불행을 끌어당깁니다.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은 하죠. 그러나 정작 그들의 문제가 되었을 때는 피해요.
저는 왜 사느냐고 물으면 이젠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요.” 근데 생각해 보니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책에서 “가족에 대해 생각나는 걸 30초 안에 써라.” 그게 무의식에 있는 당신의 가족의 모습이다라고 해서 아버지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렸는데 아버지가 저에게 혁대로 때렸던 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나더군요. 다른 것도 많을 텐데 왜 그 기억이 떠올랐을까요? 행복했던 장면을 생각해내려고 해도 하나도 안 떠오르더군요.
저는 bobab님을 좋아합니다. 물론 유부녀를 사랑한다면 큰 일 나겠지요. 그의 삶의 방식을 좋아한다는 것이죠 . 정말 어렸을 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것만큼 큰 축복이 있을까요? 어렸을 때 사랑을 듬뿍 받으면 일부러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행복이 무의식에 스며들어 있기에 그리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해 주는 부모가 있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겁니다. 여러 심리학책을 보아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어떻게 대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옵니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기본 성격이 정해집니다.
비록 가정환경이 좋지 못했다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내가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 하여 내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하다 하여 내가 불행한 건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제 말이 맞는지. 행복은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좌우됩니다. 행복은 내가 조정할 수 있기에 그 조정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바탕은 둔 행복 보고서 같은 느낌의 책도 있고 성서 같은 느낌의 행복을 배우는 책도 있습니다. 행복이 중요한 가치이면 이것을 배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저 사는데 바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앤드류 매튜스님의 책을 좋아합니다. 그의 책을 보면 행복합니다.)
삶 자체를 즐기세요.
삶 자체를 즐기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내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인생의 문이 열립니다.
삶 자체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몰입하는 겁니다. 어떤 일에 몰입하는 순간 그 환경이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재미있게 되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흘러갑니다. 몰입을 설명한 좋은 책이 있죠. 바로 칙센트 미하이님의 《플로우,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란 책이죠. 칙센트 미하이님은 다음과 같이 행복을 말하면서 몰입을 말하죠.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은 하루 종일 해도 힘들지 않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어렸을 때 찾으면 좋은데 우리나라는 그런 환경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학과 공부만 강조하지 아이의 소질이 무언지 찾아주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즐기려면 느껴야 합니다. 느껴야 참 맛을 알 수 있죠. 우린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 속까지 느끼는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양념을 듬뿍 칠해서 한 번 먹었을 때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씹을수록 맛있는 음식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즐거운 쾌락보다는 진정한 재미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신기한 것은 사람 몸은 매우 정직해서 제대로 느끼기만 하면 나쁜 것은 저절로 싫어진다는 것이죠.
내 그림자를 인정하세요. 당신은 보통 사람인 것도.
불행했던 기억도 때론 도움이 됩니다. 또 그 사실을 보며 불행하다고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사실이 내 마음을 괴롭힐 수 없습니다. 일단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그때부터 행복하게 사는 길이 열립니다. 과거를 부정하면 과거에 묶여 버립니다. 과거에 다리가 묶여 있는데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먼저 묶여 있는 끈을 풀어야 하는데 심리학 쪽으론 인정하고 용서하는 것이 그러한 방법입니다. 속상하고 아픈 일은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으면 마음이 풀립니다. 참 이 원리를 알고서 신기했는데요. “좋은 심리치료사 만나는 건 참 행운이다.”라는 걸 심리관련 책을 읽으면서 느낍니다.
심리학자 융님은 내 마음 속 아픈 상처를 ‘그림자’라고 하는데요. 이상하게도 화가 나는 일을 보면 이것이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 안에 있는 아픈 상처가 없다면 그것을 느낄 수도 없을 테니까요. 맞죠? 처음에 데비 포드님의 《삶의 빛을 찾는 사람들에게》란 책을 보면서 그림자 이론을 배우고 매우 신기해했는데 살아갈수록 힘이 되는 원리더군요.
내 그림자를 인정하세요. 그냥 나를 인정하고, 내 환경을 인정하고, 거기서 시작하세요. 사람들에게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먼저 말하지 마세요. 저는 집에 불이 2번 났는데,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치가 달라집니다. 거기에다가 형이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봅니다. 아주 친한 사람이 먼저 말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먼저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요. 성공하면 불행했던 과거가 칭찬 거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세상을 잘 보세요. 당신보다 불행했던 사람은 너무나 많아요. 가정을 보면 말썽쟁이 한 사람씩은 있고 그들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에요. 당신은 보통 사람인 거죠. 정말요.
선택이란 자유가 나에게 있음을 느끼세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얄미운 게 있는데요. 자기가 할 수 있는데도 꼭 사람이 선택하도록 하는 거죠. 아브라함이 자식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도 그랬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도록 하는 것도 그랬고.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냥 해 버리지 사람이 그것을 선택하도록 하죠.
저는 선택이란 자유를 깨닫고 완전히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 이것만큼 삶을 바꾸는 깨달음이 있을까요. 이 깨달음은 세상은 그대로인데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놀라운 현상을 보여주죠. 마치 기독교에서 성령 받은 것과 같은 느낌인데, 이것보다 더 적절한 건 없을까? 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기분같은 것이죠. 세상은 그대론데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달라지는 거죠.
이 깨달음은 극한 상황에 있을 때 그 빛을 더욱 발하죠. 전에 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글을 쓰기도 했는데 빅터 프랭클님 이야기를 한 번 더 해보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이 이야기를 보고 나중에 빅터 프랭클님의 죽음의 수용소란 책까지 사 보았는데, 아~ 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놀라운 발견이었어요. 괴로움은 내가 선택한 반응이고, 이 괴로움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내게 있음을 깨닫자 괴로움이 사라졌거든요. 세상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내게 주어진 거죠.
미국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마틴 셀리그만 박사는 동물들의 숙달된 무기력과 사람들의 언어 습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숙달된 무기력이 무엇일까요? 실제로 할 수 있는데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낙관적인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이유》란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셀리그만은 그가 펜실베니아 대학원생이었을 때 실험실에서 개들이 실험에 숙달하는 데 실패하는 것을 보고 이 이론의 첫 힌트를 얻은 것이다. 보통 그런 실험에서 동물은 불쾌한 충격을 받는데 울타리 안에서 어슬렁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장애물을 뛰어넘으면 충격을 피할 수 있게 한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개는 어떻게 하면 그 충격을 피할 수 있는지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런 실험에서 어떤 개들은 피하려고 하지 않고 무력하게 그대로 앉아 있기만 한다. 여기서 셀리그만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이런 개들은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충격에 여러 번 노출되었고, 그 결과 그들의 노력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셀리그만이 발견한 바에 의하면 동물들의 반응을 방해하는 것은 충격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반 기대치 때문이었다.
(또 한편의 숙달된 무기력에 대한 글은 Hani님의 학습된 무력감2란 글을 참고 하세요.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을 때 물대포를 맞으면 물대포를 쏘지 않더라도 바나나를 따 먹지 않는다는 실험이죠.)
우리가 이 글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고 배운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죠. 저는 영화 미스트의 끝 장면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왜냐하면 그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사람들은 한 발자국만 앞에 가면 해결이 되는데 앞이 안개처럼 뿌옇게 되어 한치 앞도 안 보이면 스스로 포기하여 자살해요.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는 사람 수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왜 옳은가의 문제이죠. 또 그것을 끊임없이 찾아야 합니다.
셀리그만님은 숙달된 무기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숙달된 무기력이 사람들에게는 언어 습관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에 맞서 싸우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을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무력하게 그리고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죠. “난 안 돼, 불행해, …” 이런 언어 습관이 들면 우린 불행을 끌어당깁니다. 관심을 갖자마자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앞에 펼쳐진 경험이 있으세요. 내가 필요한 사람이 만나자고 한 경험이 있으세요. 그런 겁니다. 사람은 바라고 있는 것을 끌어당깁니다. 이것은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란 책을 보면 자세히 나오는데요. 여기서는 심지어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를 그려 놓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여러 가지 예를 보여줍니다.
다행히도 나쁜 언어 습관에 대해서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셀리그만님이 말한 것처럼 우린 그것을 익혔다면 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하세요. 행복을 배우세요.
행복해지겠다고 결심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불행하다고 말하고 불행한 것을 바라보면 불행을 끌어당깁니다.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은 하죠. 그러나 정작 그들의 문제가 되었을 때는 피해요.
저는 왜 사느냐고 물으면 이젠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요.” 근데 생각해 보니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책에서 “가족에 대해 생각나는 걸 30초 안에 써라.” 그게 무의식에 있는 당신의 가족의 모습이다라고 해서 아버지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렸는데 아버지가 저에게 혁대로 때렸던 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나더군요. 다른 것도 많을 텐데 왜 그 기억이 떠올랐을까요? 행복했던 장면을 생각해내려고 해도 하나도 안 떠오르더군요.
저는 bobab님을 좋아합니다. 물론 유부녀를 사랑한다면 큰 일 나겠지요. 그의 삶의 방식을 좋아한다는 것이죠 . 정말 어렸을 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것만큼 큰 축복이 있을까요? 어렸을 때 사랑을 듬뿍 받으면 일부러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행복이 무의식에 스며들어 있기에 그리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해 주는 부모가 있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겁니다. 여러 심리학책을 보아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어떻게 대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옵니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기본 성격이 정해집니다.
비록 가정환경이 좋지 못했다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내가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 하여 내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불행하다 하여 내가 불행한 건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제 말이 맞는지. 행복은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좌우됩니다. 행복은 내가 조정할 수 있기에 그 조정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바탕은 둔 행복 보고서 같은 느낌의 책도 있고 성서 같은 느낌의 행복을 배우는 책도 있습니다. 행복이 중요한 가치이면 이것을 배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저 사는데 바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앤드류 매튜스님의 책을 좋아합니다. 그의 책을 보면 행복합니다.)
삶 자체를 즐기세요.
삶 자체를 즐기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내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인생의 문이 열립니다.
삶 자체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몰입하는 겁니다. 어떤 일에 몰입하는 순간 그 환경이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재미있게 되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흘러갑니다. 몰입을 설명한 좋은 책이 있죠. 바로 칙센트 미하이님의 《플로우,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란 책이죠. 칙센트 미하이님은 다음과 같이 행복을 말하면서 몰입을 말하죠.
“행복이란 것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나의 ‘발견’이다. 행복은 운이 좋아서라든지 어쩌다 생긴 기회의 산물이 아니다. 돈이나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외부에 있는 사물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이 이것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다. 실제로 행복은 우리가 준비해야 하고, 마음속에서 키워가야 하며, 사라지거나 빼앗기지 않도록 스스로 지켜내기도 해야 하는 특별한 것이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은 하루 종일 해도 힘들지 않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어렸을 때 찾으면 좋은데 우리나라는 그런 환경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학과 공부만 강조하지 아이의 소질이 무언지 찾아주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즐기려면 느껴야 합니다. 느껴야 참 맛을 알 수 있죠. 우린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 속까지 느끼는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양념을 듬뿍 칠해서 한 번 먹었을 때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씹을수록 맛있는 음식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즐거운 쾌락보다는 진정한 재미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신기한 것은 사람 몸은 매우 정직해서 제대로 느끼기만 하면 나쁜 것은 저절로 싫어진다는 것이죠.
내 그림자를 인정하세요. 당신은 보통 사람인 것도.
불행했던 기억도 때론 도움이 됩니다. 또 그 사실을 보며 불행하다고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사실이 내 마음을 괴롭힐 수 없습니다. 일단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그때부터 행복하게 사는 길이 열립니다. 과거를 부정하면 과거에 묶여 버립니다. 과거에 다리가 묶여 있는데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먼저 묶여 있는 끈을 풀어야 하는데 심리학 쪽으론 인정하고 용서하는 것이 그러한 방법입니다. 속상하고 아픈 일은 사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으면 마음이 풀립니다. 참 이 원리를 알고서 신기했는데요. “좋은 심리치료사 만나는 건 참 행운이다.”라는 걸 심리관련 책을 읽으면서 느낍니다.
심리학자 융님은 내 마음 속 아픈 상처를 ‘그림자’라고 하는데요. 이상하게도 화가 나는 일을 보면 이것이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기 안에 있는 아픈 상처가 없다면 그것을 느낄 수도 없을 테니까요. 맞죠? 처음에 데비 포드님의 《삶의 빛을 찾는 사람들에게》란 책을 보면서 그림자 이론을 배우고 매우 신기해했는데 살아갈수록 힘이 되는 원리더군요.
내 그림자를 인정하세요. 그냥 나를 인정하고, 내 환경을 인정하고, 거기서 시작하세요. 사람들에게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먼저 말하지 마세요. 저는 집에 불이 2번 났는데,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바라보는 눈치가 달라집니다. 거기에다가 형이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봅니다. 아주 친한 사람이 먼저 말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먼저 이야기해 줄 필요는 없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요. 성공하면 불행했던 과거가 칭찬 거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세상을 잘 보세요. 당신보다 불행했던 사람은 너무나 많아요. 가정을 보면 말썽쟁이 한 사람씩은 있고 그들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에요. 당신은 보통 사람인 거죠. 정말요.
선택이란 자유가 나에게 있음을 느끼세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얄미운 게 있는데요. 자기가 할 수 있는데도 꼭 사람이 선택하도록 하는 거죠. 아브라함이 자식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도 그랬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도록 하는 것도 그랬고.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냥 해 버리지 사람이 그것을 선택하도록 하죠.
저는 선택이란 자유를 깨닫고 완전히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아~ 이것만큼 삶을 바꾸는 깨달음이 있을까요. 이 깨달음은 세상은 그대로인데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놀라운 현상을 보여주죠. 마치 기독교에서 성령 받은 것과 같은 느낌인데, 이것보다 더 적절한 건 없을까? 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기분같은 것이죠. 세상은 그대론데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달라지는 거죠.
이 깨달음은 극한 상황에 있을 때 그 빛을 더욱 발하죠. 전에 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글을 쓰기도 했는데 빅터 프랭클님 이야기를 한 번 더 해보죠.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이자 유태인이었다. 그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우리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도록 비참하여 말만 들어도 전율하게 되는 일들을 경험했다. 그의 부모, 형제와 부인은 수용소에서 죽거나 가스실로 보내졌다. 여동생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몰살당한 것이다. 프랭클 자신도 언제 가스실로 보내질지, 아니면 죽은 이들의 시체와 재를 치우는 ‘구원된’ 사람 중에 끼일지 한순간도 전혀 모른 채 고문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으로 고통을 받았다.
어느 날 그가 작은 감방에 홀로 발가벗겨진 채로 있을 때 자신이 후에 ‘인간이 가진 가장 마지막 자유’ – 나치들도 빼앗아 가져갈 수 없는 – 라고 명명한 상태를 자각하기 시작했다. 나치들은 그의 주변 환경 전체를 통제했고, 원하는 대로 그의 육체를 다룰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상태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아의식의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기본적인 아이덴티티는 그대로였으나, 수용소의 모든 일들로 영향 받고 안 받고의 여부는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 즉 자극과 그것에 대한 반응 사이에 바로 그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권한을 가졌던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이 이야기를 보고 나중에 빅터 프랭클님의 죽음의 수용소란 책까지 사 보았는데, 아~ 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놀라운 발견이었어요. 괴로움은 내가 선택한 반응이고, 이 괴로움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내게 있음을 깨닫자 괴로움이 사라졌거든요. 세상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내게 주어진 거죠.
# by | 2008/01/28 12:33 | 생각 나무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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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는 상황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지레 내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방향조차 알려고 하는 일을 포기하기에 힘든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셀리그만님이 말한 것처럼 학습된 무력감을 가지고 있다. 난 내가 참을성이 없었던 건, 그래서였다고 생각한다. 벗어나려고만 했지, 내게 선택권이 있는 줄을 몰랐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 more
책을 사려고 했더니 검색에 안 나오네요. 혹시 적극적 삶에의 초대란 책이 적극적 사고방식(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070718 )이란 책으로 재출간 되었는지 확인해 주시겠어요? 목차나 영문 제목을 검토하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씀하신 책 이름은 헌책방 검색을 하면 나오는데 알라딘이나 새책 파는 곳에서는 안 나오는군요.
그 때는 제가 얼음집을 만들기 전이어서 글만 읽고 갔었는데 오늘 또 우연히 클릭해보니 이 곳이네요. 얼마 전에 얼음집을 만든 터라 반가운 마음에 링크부터 하고 덧글을 남깁니다. 앞으로 종종 올게요 :)